언론보도

[김석우 칼럼] ‘찐한 문화적 자긍심’ - 광복 80년에 부쳐

  • 작성자: mulmangcho
  • 작성일: 2025.08.20 15:17
  • 조회수: 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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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김석우 칼럼] ‘찐한 문화적 자긍심’ - 광복 80년에 부쳐

    김석우 이사_95293

    <김석우 북한인권시민연합 이사장 (전 통일원 차관) >

     

    대한민국은 2차대전 후 신생 독립국 중에서 경제적 성공과 정치 민주화를 함께 달성한 유일한 나라다. 원조받던 나라에서 주는 나라가 되었다. 

      1945년 8월 15일 일본이 무조건 항복하였다. 식민지 조선을 통치하던 기구도 사라지고, 일본인들이 본국으로 귀환하였다. 전승국 미국과 소련이 38도선 남북으로 진주하였다. 일본인이 운영하던 자리를 메꿀 마땅한 기능인력이 없었다. 

      좋은 예는 간만(干滿)의 차가 심한 인천항의 갑문식 시설의 운영이었다. 이를 해결해 준 것은 필리핀 기술자들이었다. 필리핀은 스페인·미국의 식민지 경험, 그리고 독립 후 미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선진문물을 일찍 받아들였다. 6.25 한국전쟁에도 유엔 참전국으로 7천 명의 군인을 파견하여 지원해 주었다. 

      한국이 전쟁 폐허 위에서 미국 지원으로 미국대사관과 경제기획원(현 대한민국역사박물관)의 쌍둥이 빌딩을 지었을 때, 필리핀 전문가가 감리를 맡아 점검해 주었다. 당시 한국에는 그럴 능력이 없었다. 

      1960년대의 필리핀은 한국보다 국민소득이 세배 정도나 높았다. 1966년 베트남전 참전국 정상회담에 박정희 대통령이 참석했을 때 마르코스 대통령이 면담 일정을 잘 내주지 않을 정도로 한국을 가벼이 여겼다. 

      오늘의 필리핀은 크게 다르다. 마르코스의 아들이 대통령 자리에 올랐지만, 많은 필리핀 국민은 가난에서 헤어나지 못하고 있다. 한국이 한강의 기적을 이룬 데 비해, 필리핀은 사회의 구조적 문제를 좀처럼 해결하지 못했다. 

      이승만 대통령은 사회주의자 조봉암을 농림부 장관으로 삼아 1949년 농지개혁을 단행하여 경자유전(耕者有田)원칙을 확립하였다. 1950년 6월 김일성이 남침했을 때, 환영하는 농민은 없었다. 필리핀의 경우 토지개혁 시도는 실패하였다. 필리핀 경제는 150여 개의 유력 가문이 장악하고 있는데, 그들은 소유한 토지를 내놓으려 하지 않았다. 1980년대 필리핀 민주화의 기수였던 아키노 상원의원이 미국 망명에서 귀국하는 길에 정부 측 요원에 의해 피살되었다. 그 부인 아키노 여사가 피플파워 혁명 성공 후 대통령에 당선되었다. 그녀가 농지개혁을 시도했지만, 방대한 땅을 소유한 그의 오빠와 같은 기득권세력의 반대로 실패하였다. 지금도 농촌의 많은 주민은 땅 한 평 없는 농업노동자 신세를 벗어나지 못했다. 

      또한 필리핀의 기업인들도 마찬가지다. 한국의 경제인들이 목숨을 건 도전 정신으로 기업을 일으킨 것과 다르다. 어렵게 물건을 생산하기보다는 외국 제품을 사들여 이윤을 추구하는 쉬운 길을 선호하였다. 마젤란이 1521년 세계 일주 중 필리핀 전투에서 사망하였지만, 그 후 유럽이 중국과 교역하는 과정에서 필리핀은 중계지 역할을 하였다. 중국의 차, 도자기, 비단과 같은 제품, 남미와 일본의 은이 서로 교환되는 요충지였다. 그런 탓에 중국계 화상(華商)들이 필리핀 경제를 주물러 왔다.

      결국 제조업은 발전하지 못했고, 한국과의 비교에서 쉽게 역전 현상이 벌어졌다. 

      지금 필리핀 여성들은 싱가포르, 홍콩, 한국과 같은 나라에 가사도우미로 나와서 귀한 달러를 벌어 본국 가족에게 보낸다. 일요일 싱가포르나 홍콩의 중심가엔 가사도우미로 일하는 필리핀 여성들이 몰려나와 옹기종기 앉아 서로 안부를 나누면서 휴일을 지낸다. 한국에도 일요일 혜화동 로터리 성당 앞엔 미사를 마친 필리핀 여성들이 모여 시간을 보낸다. 본래 스페인과 미국의 통치 기간 서양문명을 일찍 받아들였고, 풍부한 자원을 가진 필리핀 사람들이 지금 생존을 위해 가사도우미로 해외에 나가는 모습은 한국과 대조적이다.

     

    (중략)

     

    해방 후 80년 이승만, 박정희와 같은 지도자가 자유민주주의, 시장경제의 기반 위에서 국민의 잠재력을 최대한 발휘하도록 고취하였다. 숨었던 능력을 발현하는 토양을 만든 것이다. 오늘에야 열등감에서 벗어났다. 역사와 전통에 대한 자부심이 부활하고 있다. 이러한 문화적 자긍심이 옛것을 되살리고 경제 사회의 역동성을 일궈 내고 있다. 정치, 경제, 사회, 문화, 체육, 예술 모든 분야에서 자신감으로 앞서 나가고 있다. 

      허나, 실패한 공산주의에의 망상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북한의 김씨 정권에 대한 충성을 맹세하는 종북세력이 시대적 흐름을 가로막고 있다. 그들이 정신 차리게 되는 날 한국 사회의 새로운 도약이 가능할 것이다. 다시 한번 우리의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긍심을 되새길 필요가 있다. 

      대한민국은 주변 강국의 틈새에서 고통받던 운명에서 벗어났다. 이제 자유 수호의 중심인 미국과 손잡고 지역의 평화와 번영을 이끄는 중추적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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